우리가 몰랐던 약용식물 이야기

 

코로나 공존시대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자작나무 숲.
코로나 공존시대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자작나무 숲.

 

글 사진 · 정구영(한국토종약초나무연구회 회장)

 

지구상의 식물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특징과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자작나무의 애칭은 ‘겨울 숲의 귀부인’ 또는 ‘숲의 가인(佳人)’, 꽃말은 ‘당신을 기다린다’이다.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백옥(白玉)과 같이 흰 빛깔의 껍질은 그 어느 나무보다도 희망과 빛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7월호에는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면 파란 잎과 줄기로 순백 세상이 펼쳐지는 힐링이 저절로 되는 숲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작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이 새하얀 수피(樹皮)에 반사돼 반짝거릴 때면 마치 북유럽 숲에 온 듯하다.

자작나무의 자랑은 껍질은 흰색이고, 가로로 벗겨지고, 잔가지는 자갈색으로 털이 없다. 자작나무는 내한성이 강하나 공해에 약하고 옮겨심기가 어렵고, 깊은 산을 연상시키는 나무로 도시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나무가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명도 많다. 나무껍질이 백옥(白玉)의 은빛을 띠기 때문에 ‘백단(白)’ 또는 ‘백화(白樺)’, 겨울 문턱에 하얗게 빛내 준다고 하여 ‘나목(裸木)’이라 부른다.     

 

껍질이 백옥의 은빛을 띠기 때문에 '백단' 또는 '백화' 라 불리는 자작나무.
껍질이 백옥의 은빛을 띠기 때문에 '백단' 또는 '백화' 라 불리는 자작나무.

 

우리 생활에 깃든 자작나무의 다양한 사용

우리 생활 문화사에 자작나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작나무는 한반도 개마고원쯤에서나 자라는 추운 나라 수종(樹種)으로 공기의 오염에 약하다. 북부지방 사람들에게는 자작나무 목재는 물론 기둥에서 장작까지 일상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예부터 소나무가 많은 중부 이남에서는 솔가지로 군불로 밥을 해 먹었고, 생(生)을 마감할 때 송판으로 만든 관(棺)으로 사용했다. 북한 백두산(白頭山) 주변 개마고원 너머의 여진족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작나무에 머문다는 속설(俗說)을 믿었다. 그래서 북방에서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지붕 아래 태어나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는 껍질을 땐 불로 밥을 해 먹고 생을 마감할 때는 자작나무 껍질로 몸을 싸서 땅속에 묻혔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華)’로 쓴다. 흔히 결혼식을 화촉(華燭)이라고 한다. 옛날에 양초와 전기가 없을 때 혼례를 치를 때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 하여 자작나무를 뜻하는 화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자작나무 껍질이 아름답고 흰 종이처럼 잘 벗겨져 명함을 만들고,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하는 낭만적인 나무이다. 옛날 종이가 귀했던 시절, 자작나무 껍질을 얇게 벗겨 종이처럼 만들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쓰고 보관하기도 했다. 또한, 목재가 단단하고 치밀하여 경남 합천 해인사(海印寺)의 팔만대장경 일부도 자작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들었고,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도 자작나무로 그려졌다.

자작나무는 쓰임새가 많아 조선 성종 때 화피(華皮)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 쓰기도 했고, 서민들은 기름기가 많아 촛불이나 호롱불 대신 불을 밝히는 데 애용했다.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해서 조각재로 많이 쓰고, 벌레가 먹지 않아 잘 썩지 않고 오래 가기 때문에 조경수로서의 가치도 높다.     

 

새하얀 자작나무를 감싼 덩굴식물.
새하얀 자작나무를 감싼 덩굴식물.

 

약용, 관상용, 공업용으로서의 가치

서양에서 자작나무는 사랑의 나무이고, 슬라브족은 사람을 보호해 주는 신(神)의 선물로 여겨 집 주변에 심는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자작나무로 만든 통에 수액을 받고 자작나무 둘레에 모여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풍속이 있고, 북유럽에서는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를 다발로 묶어서 사우나를 할 때 온몸을 두드리는데 이렇게 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 하여 주목을 받는다.

옛날에는 자작나무 껍질이 매끄럽고 물기에 강해서 우천 시에 불쏘시개로 이용했고, 지팡이, 연장 등의 손잡이를 감는 데 이용했고, 오늘날에는 조각재, 특수 용재, 가구재, 세공재, 방적용 목판, 판목, 펄프 용재로 쓰인다. 구소련에서는 자작나무를 건류해서 얻은 자작나무 타르를 가죽 제조에 사용하였고, 새순을 증류해서 얻은 방향유를 화장품 제조에 사용한다.

우리 조상은 24절기 중 곡우(穀雨) 때 자작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서 미네랄이 풍부한 수액을 받아 건강음료로 마셨다. 자작나무 줄기나 가지의 껍질을 건조해 톱밥으로 만든 뒤 170~190도의 뜨거운 온도에서 끓이면 ‘자일란’이라는 성분을 얻는다. 자일란을 분해해 ‘자일로스’를 만들고, 화학처리를 하면 우리가 흔히 먹는 자일리톨껌을 만든다.

 

푸른 숲 앞에 조성된 자작나무 군락지. 새하얀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푸른 숲 앞에 조성된 자작나무 군락지. 새하얀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자작나무의 자랑은 수액, 껍질, 나무를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이다. 차(茶)를 만들 때는 연중 나무껍질을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후 찻잔에 조금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1~2분 후에 꿀을 타서 마신다. 약초를 만들 때는 연중 나무껍질을 채취하여 벗겨 햇볕에 말려 쓴다. 자작나무 약성은 차가우며 쓰다. 한방에서 줄기와 껍질을 말린 것을 백화피(白樺皮), 나무줄기를 통해 내려가는 사관부 내(內) 수피에서 나오는 수액을 화수액(樺水液)이라 부른다. 주로 통풍이나 신장 질환에 다른 약재와 처방한다. 민간에서 통풍에는 자작나무의 수액을 꾸준히 마신다.     

 

국내 대표 자작나무 숲으로 떠나는 여행

단군 이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前代未聞) 코로나 사태 이후, 최근 3년여 만에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는 일상의 삶이 돌아왔다. 올여름 자작나무의 초록 잎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백색 나무줄기와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자작나무 숲을 찾아 여행하는 것도 잘사는 삶이 아닐까?

 

인제 국유림관리소가 만든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의 겨울 모습.
인제 국유림관리소가 만든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의 겨울 모습.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숲을 보유한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는 국내 대표 힐링 숲 치유 여행지이다. 인제읍 원대봉(850m) 능선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숲이 있다. 1.38km² 면적에 약 20m 이상 수직으로 뻗어 있는 20~30년 수령의 자작나무가 약 4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강원 인제군 남면에 응봉산이 있다. 매봉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기슭에 약 90만 그루가 있다. 인제 국유림관리소가 만든 산림 레포츠 숲에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은 6ha에 1993년에 심은 3만 6,000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경북 영양군 검마산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약 12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는 인공 숲이다. 산책로 길이는 2km로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오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외 강원 원주 섬강 자작나무 숲 둘레길, 경기 양평군 서후리 숲, 경북 청송 자작나무 명품 숲 등이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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