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설악산 용대리 매바위

바람을 타고 오르는 등반가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주민욱 객원기자  협찬 · 레드페이스

 

황태덕장, 용대리의 또다른 명물

매바위 인공폭포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마을에 위치한다. 서울을 떠나 3시간, 미시령로를 따라 백담마을에 들어서자 길을 따라 황태덕장과 저온창고가 즐비하다.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북천의 건너편으로는 백담마을부터 황태마을까지 이어지는 4km의 ‘황태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작게는 300평에서 크게는 4,000평 규모의 크고 작은 이십여 개의 황태덕장이 있다. 

황태는 인제군의 특산물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황태의 70%가 이곳 용대리에서 만들어지며, 국내 최대 규모의 황태덕장도 용대리에 있다. 황태는 본래 북쪽 원산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원산 출신 주민들이 6.25이후 이곳에 내려와 황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1961년부터 용대리에 황태마을이 조성되었다.

황태는 한겨울에 명태를 덕장에 걸어놓고 얼고 녹기를 반복하여 만들어진다. 명태를 거는 즉시 추위에 바로 얼어야 육질의 양분과 맛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황태덕장은 기후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밤 기온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두 달 이상 지속되어야 황태덕장의 기본 조건을 갖추는데, 매서운 골바람으로 유명한 용대리는 그에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매바위 인공폭포 도착을 앞두고 잠시 삼거리에서 황태길로 방향을 틀어 끝없이 널려진 황태를 돌아본다. 겨우내 이곳에서 혹독한 추위를 버틴 명태만이 이윽고 살집이 두툼하고 노랗게 변하며 맛 좋은 황태로 거듭나는 것이다. 솔솔 풍기는 짭짤하고 고소한 황태향이 코끝을 강하게 스치운다. 

 

 

 

매의 모습을 닮은 수직의 빙벽

“촬영은 오래 안 걸리겠죠? 매바위 정말 추운 곳이거든요.”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자 좌측으로 우뚝 솟아있는 매바위가 바로 보인다. 창문을 열기 무섭게 문틈으로 매서운 바람이 들어온다. 도착 전 취재원의 질문의 의미는 바로 이 거센 바람이었으리라. 삼거리 공터에 주차를 하고 바로 벽 앞으로 간다. 벽 앞으로 덩그러니 세워진 셸터 한 동이 강풍에 날아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모습에서 천고지 바람골의 위용을 느낀다. 

빙벽은 높이 85m의 거대한 오버행 바위인 매바위에 형성되어 있다. 매바위는 바위 앞의 용대교 건너편에서 바라볼 때, 벽의 모양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매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매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이 웅장한 바위에 인공폭포가 생기게 된 유래도 황태와 관련이 있는데, 황태 축제 개최를 위한 관광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용대리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물을 끌어올려 인공폭포를 만들게 된 것이다. 

황태로 인해 조성된 용대리 인공폭포는 사계절 쉼 없이 흐른다. 바위를 타고 북천으로 힘차게 내리꽂는 물줄기가 겨울 용대리 골짜기의 혹한의 추위를 만나면서 얼고 또 얼고, 그 위로 또 얼면서 자연스레 거대한 빙벽이 형성되는 것이다. 빙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황태와 닮았다. 폭포와 명태, 빙벽과 황태. 다르지만 닮은 용대리를 대표하는 명물들이다. 

 

 

바람이 얼린 거대한 고드름

“3년 전에 기련 형이랑 요세미티 원정을 계획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어요.”

“그때 많이 아쉬웠지~ 코로나 때문에 요새 원정을 못 갔더니, 휴가가 남아도네.”

각각 빙벽 경력 30여 년, 1년의 최기련씨와 이지은씨를 취재원으로 초대했다. 최기련씨와 이지은씨는 끈끈한 선후배이자 사제지간이다. 두 사람은 4년여 전, 본래 전주에서 등반을 시작했던 이지은씨가 서울에 올라와 암장을 옮기게 되면서 처음 만났다. 이후 전국 각지 스포츠 등반과 멀티피치 등반을 다니고, 해외원정도 준비할 만큼 실력과 호흡을 맞춰가며 함께 줄을 묶은 지 어느덧 4년이 되었다. 지난해 시작한 빙벽도 최기련씨의 제안으로 시작했다며 이지은씨가 말을 덧붙인다.

“작년에 기련 형에게 처음 빙벽을 배우러 왔던 곳도 매바위였어요. 자연바위와 달리 빙벽은 무서워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형 덕분에 안전하게 잘 시작한 것 같아요.”

등반 준비를 마친 최기련씨가 중앙부 거대한 고드름 앞에 선다. 하단부에 첫 스크류를 설치한 뒤 이내 얼음에 첫발톱을 박는다. 좌로 우로, 다시 좌로 우로… 최기련씨가 물 흐르듯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금세 약 5m 높이의 하단부 동굴 구간을 지난다. 첫 번째 턱을 넘어서기 전 세 번째 스크류를 설치한 후로는 등반에 더욱 속도가 붙는다. 팔을 길게 뻗어 바일을 멀리 내리치는 최기련씨, 그의 바일이 바람을 가른다. 

“지은이 자세 좋다. 그렇지, 거기서 발을 멀리 보내고. 이제 N바디로 올라봐!”

최기련씨에 이어 이지은씨가 톱로핑으로 등반을 진행한다. 긴장한 이지은씨 뒤로 최기련씨가 나지막이 응원을 보낸다. “저는 자세 잘 몰라요! 막바디에요 막바디!” 선배가 오른 등반선을 따라 이지은씨가 안정적인 동작을 구사하며 천천히 벽을 오른다. 연신 매서운 강풍이 휘몰아치고, 수차례 바일을 내려찍은 이지은씨 앞으로 이내 손바닥 크기의 얼음이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해가 들지 않는 북향의 얼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단단하다.

 

 

매바위의 마무리는 황태해장국

“어휴 이번에는 잘 피했다. 얼마 전에 설악산으로 빙벽 등반을 갔었는데, 갑자기 떨어진 낙빙을 피하지 못했어요. 너무 아파서 빌레이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한동안 팔 한쪽 전체가 아예 멍이었어요.”

빙벽은 예측불가의 등반이다. 루트와 홀드가 정해져있지 않아, 등반자가 가는 길이 곧 루트이자 등반선이 되고, 날씨와 얼음의 상태에 따라 등반의 위험도와 낙빙의 가능성이 시시각각 변한다. 지난 설악산 낙빙의 상처에도 금세 빙벽장을 찾은 이지은씨, 그 어떤 위험성과 예측불허에도 빙벽은 등반가를 매료시키는 그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매바위에 등반을 오면 꼭 황태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갑니다. 마을 주민들이 등반인들을 많이 배려해줘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번갈아 수차례 등반을 마친 뒤, 추위를 피해 재빨리 장비를 정리한다. 하강 직후 뜨겁게 피어오른 두 사람의 등반 열기도 쉬지 않고 불어오는 칼바람에 금세 차갑게 식는다.  

‘매바위의 마무리는 황태해장국’이라는 최기련씨의 등반 공식을 따라 정리를 마치고 빙벽 바로 앞의 황태식당에 들어선다. 뜨끈한 황태해장국과 감칠맛 나는 동동주가 오후내 추위에 떨었던 취재진의 몸을 녹인다. 황태 생산지 용대리에서 먹는 황태의 맛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식탁 옆 창문을 가득 채운 매바위 인공빙벽의 거대한 모습은 여느 조망 좋은 레스토랑 저리가라다. 뱃속 가득 온기를 채우며 바람의 등반지 매바위 등반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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