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칼럼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 


글 사진 · 이규태(등산안전협회 회장)

 

그들은 왜 계속 산에 오르는가? 1985년 영국 산악인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는 안데스산맥 시울라 그란데(6,400m)를 등정한 후 조가 추락하여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매달렸다. 둘 다 죽느냐, 로프를 끊고 한 사람만이라도 살 것이냐의 극한상황에 직면했고, 사이먼은 결국 로프를 절단하고 홀로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사이먼은 자신이 살기위해 조를 죽였음을 고백하고 자책하고 있던 중, 죽은 줄 알았던 사이먼이 3일을 기어서 기적의 생환을 했다. 한 사람이라도 살기 위해 로프를 끊은 것이 두 사람 모두를 살린 셈이 된 것이다. 이 등반은 조 심슨이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후일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05년 8천 미터 8개봉을 올랐던 박정헌은 대학 재학 중인 후배 최강식과 촐라체 북벽(6,440m) 동계 초등에 성공했다. 하산 중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져 두 다리가 부러졌고, 박정헌 자신도 늑골이 부러지는 극한상황이 되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기어 기어서, 기약할 수 없는 몸짓으로 베이스캠프로 향해서 5일 만에 극적으로 모두 살았다. 이 등반은 박정헌이 「끈」이라는 책으로, 소설가 박범신이 「촐라체」라는 소설로 출간하기도 했다.

촐라체 필사의 귀환에서 박정헌은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최강식은 손가락 9개와 발가락 10개 모두를 잃었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좌절만 남았다. 그러나 그 후 박정헌은 세계 최초로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에서 칸첸중가까지 히말라야 3,200km를 횡단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전거, 스키, 카약으로 히말라야 5,800km를 땅으로도 횡단했다. 최강식은 사고 후 복학하여 경상대 학생회장을 했고, 특수교육으로 석사를 마친 후 중학교 체육교사가 되었다. 

조 심슨, 사이먼 예이츠나 우리나라 박정헌, 최강식이나 히말라야 등반을 추구하는 모든 고산등반가들-. 또는 굳이 히말라야 등반이 아니더라도 북한산 설악산,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극한상황을 경험하고 “다시는 이런 위험한 등반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선 또다시 산을 오르는 모든 산악인들-. 그들의 죽음에 맞닿았던 극한상황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그 산이다. 세상을 다 잃은 좌절감을 안겨준 그 산을 그들은 왜 계속 오르는가?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는 이런 주제에 관한 탐구서다. 

 

여성 산악인이 쓴 히말라야 탐구서

저자 박경이는 1985년 서울교대산악부에서 암벽등반을 시작하여 4학년 때 대학산악연맹 부회장으로 백두대간 개념이 생소하던 때, 선배들이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전체를 15구간으로 나누어 15개의 팀을 구성했는데 그는 이화령에서 속리산 구간을 맡았다. 

20대에 시작한 히말라야 첫 등반은 아마다블람(6,856m)이었고, 두 번째는 가셔브럼2봉(8,035m)이었는데 이때는 30대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 후로도 각 대륙에서 여러 고산등반을 계속했다. 24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후 스포츠아웃도어학과 교수로 재임했고, 산악전문지 편집장으로도 활약했다. 산악활동을 온몸으로 실행하고 산악문화를 글로써 추구한 그는 집필과 학술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국립산악박물관에서 관장으로 학예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는 고산등반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많다. 트레킹과 등반은 어떤 점이 다른가. 6천m와 7천m, 7천m와 8천m의 등반은 무엇이 다른가. 7,500m 그 위를 왜 죽음의 지대라 하는가. 죽음의 지대에서 발생하는 여러 신체적 위험요소와 산악인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오르는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가. 이 책은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고산등반을 꿈꾸는 사람들은 물론, 고산등반이 아니더라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들의 고산등반에 관한 기록은 물론, 세계적인 여성 산악인의 활동기록도 있다. 히말라야 등반 시 셰르파의 역할, 등반이 아닌 셰르파족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측면의 설명도 있다.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또 고산등반이나 트레킹을 계획하지 않더라도 히말라야가 어떤 곳이고, 산악인들이 왜 그곳으로 향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춰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알파인스키와 산악스키가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스키로 활강하여 5시간 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이야기와 6대륙 최고봉에서 스키로 활강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등반하는 것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K2 정상에서 스키로 활강한 것까지 소개한 것은 그가 산악스키 국제심판이자 국내외 대회 수상경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설명들이다. 

이 책은 히말라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가는 이유를 탐구하는 책이라 하겠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히말라야 등반얘기가 아니다. 자신을 향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누가 섣불리 답을 할 수 있을까? 고산등반의 의미와 산에서의 죽음의 가치는 정말 진지한 탐구대상이고 어려운 주제다.” 

저자는 「고산 등반의 의미에 관한 문화기술적 연구」, 「산악연구의 동향 분석 및 미래연구 방향」, 「국립산악박물관 체험프로그램 이용에 대한 만족도가 재방문에 미치는 영향」, 「미래 산악관광 연구방향에 관한 탐색적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한 석학이다.

    

산악문화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

2019년 알피니즘(Alpinism)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통상 알피니즘이란 빙, 설, 암이 있는 조건에서의 등산을 의미한다. 그 어원은 알프스지역 등산에서 연유되었으나 지금은 지역에 관계없이 고산등산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고산이란 대략 3천m 이상 만년설이 있는 산을 일컫지만 겨울철 빙, 설, 암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우리의 겨울산도 고산의 조건을 갖춘다. 겨울의 설악산이나 한라산은 때론 히말라야에 버금가는 강추위와 거친 환경이 된다. 

유네스코 기록문에 알피니즘을 ‘고산의 산정과 암벽이나 빙벽을 타고 오르는 기술로서 고산 환경에 대한 지식 및 가치관, 역사가 녹아내린 전통적인 행위’라 규정했다. 또 자연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서로 도움주기 등을 강조하는 윤리관도 함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네스코가 알피니즘을 예술(Art), 나아가 문화로 인식했다는 의미다.

‘알피니즘은 스포츠로서의 등산, 즉 등산 자체의 즐거움과 기쁨을 목적으로 높은 산, 새로운 산, 험한 산에 오르는 것으로 한정한다. 알피니즘이 알프스 높이 이상의 고산, 그리고 만년설과 얼음과 바위의 수직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높이 대신 길이로 펼쳐진 백두대간이 있다.’고 했다. 저자가 등반이라는 것을 높이의 등반과 길이의 등반으로 인식한 것도 흥미롭다. 

‘높이 2,000m가 안 되지만 아름답기로는 비교할 수가 없는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등 명산이 백두대간 줄기 위에 솟아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보이는 산들은 용이 사는 무서운 곳이 아니라 노닐 수 있는 산이다. 산을 찾아 심신을 도야하고 수련의 장소로 삼았고 산에서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자 했다. 서양의 알피니즘은 경쟁, 도전, 극복의 장이었으나 우리의 산은 놀이, 구도(求道), 수양의 장이었다. 알피니즘보다 더 역사가 오래되고, 철학적인 깊이와 폭에서 다른 차원의 독특한 가치를 지닌 한국의 백두대간과 유산(遊山) 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르는 날을 기대해본다’고 했다. 

이쯤에서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속마음을 알 수 있다. 고산등반을 추구했던 여성 산악인으로서 산악문화에 관하여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찌 이렇게 쉽게 잘 표현했는가!”는 생각이 들었다. 산악인이라면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고마운 생각과 함께 홀가분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거운 짐을 나눠가는 기분이었다. “이런 후학들이 있으니 나의 작업도 외롭지 않구나. 미완으로 끝난다 해도 안타까울 거 없다.” 나는 한 산악인으로서 이 책에 고무되었고 그의 연구활동을 응원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산 덕분에 경이로운 삶을 살았다. 등반은 한계를 넘기 위한 행위이자 몰입도가 높은 스포츠다. 한계가 높을수록 도전하는 짜릿함도 크다. 그것을 극복했을 때 생기는 성취감과 자신감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됐다. 올림픽 메달처럼 외적 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적 보상이 크다. 도전을 완수하는 과정, 이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일상에서는 평범한 아줌마 박경이라 할지라도, 산에 올라서 정상에 서는 순간 산악인 박경이로서 우뚝 선다. 한계, 몰입, 성취 이 3박자가 내 삶의 큰 행복이었다.’

산악문화에 관한 그의 학문적 활동에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