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백 기자의 남도 맛 기행

 

남도의 맛은 깊고, 남도의 멋은 높다

 

글 사진 · 이동백 기자

 

입안에 살살 녹아드는 남도의 맛과 눈길에 아슴아슴 밟혀 드는 남도의 멋을 마음으로 수습하며, 남도 기행의 마침표 하나를 찍었다. 그러나 맛의 종지부와 멋의 대미(大尾)는 남겨 놓았다. 왜냐하면, 세상은 넓고, 인생은 아직 남은 미래가 아득하니까. 남도의 맛은 깊고, 남도의 멋 역시 높았다. 그렇다, 남도, 목포와 홍도는 그랬다.

 

검푸른 홍도 앞 바다에 몸을 담근 독립문바위.
검푸른 홍도 앞 바다에 몸을 담근 독립문바위.

 

남도 기행을 떠나던 날은 팔월의 햇볕이 펄펄 끓어올랐다. 그러나 모천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폭포의 거슬림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듯이 한마음 모아 남도로 떠나는 뜨내기들의 발걸음엔 거칠 것이 없었다. 대전발 목포행 KTX에서 뜨내기들이 나눈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당찮게도 필통이 있었다.

오십여 년 전에 누구는 지퍼가 달린 서독제 필통을 썼고, 누구는 플라스틱제 필통을 썼고, 또 누구는 양철 조각으로 만든 필통을 썼노라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필통이 기억에 없고 책갈피에다 끼워 쓴 몽당연필만 생각날 뿐이어서 내 필통은 책갈피였노라고 일갈하고 말았다. 이러는 동안에도 기차는 달려서 맛 기행의 목적지인 목포에 도착한 것은 정오를 넘긴 시각이었다.

 

소갈비에 낙지를 넣어 끓여낸 갈낙탕은 꼬들꼬들 씹히는 맛과 시원 국물 맛이 일품이다.
소갈비에 낙지를 넣어 끓여낸 갈낙탕은 꼬들꼬들 씹히는 맛과 시원 국물 맛이 일품이다.

 

제철 풍미 가득한 민어의 맛

남도의 맛을 혀끝으로 느낀 첫 번째 것은 갈낙탕이었다. 쇠갈비에 낙지를 넣어 끓인 탕인데, 맛의 별스러움은 어떤지 몰라도 뜨내기에겐 그 이름이 낯설어 별스러웠다. 이틀 묵을 숙박지를 정하여 여독을 풀어가며 더위를 식히고, 해가 설핏할 무렵에 민어의 풍미를 우선 마음으로 느끼며, 임자도 민어 전문인 ‘중앙횟집’을 찾아들었다. 두루 옅은 분홍빛을 띠면서 초승달 같은 흰 반점이 두어 군데 박힌 민어의 살코기는 제철의 풍미(風味)를 고스란히 지녔다. 혀끝으로 느낀 민어의 맛은 마음으로 느낀 맛보다 두어 배는 좋았다.

민어회에 곁들여 나온 뱃살과 아가미와 껍질과 부레가 보기에도 낯설고 맛도 낯설었다. 뱃살은 뱃살대로,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부레는 부레대로 혀에 부딪히는 맛이 정말 별스럽게 감칠 맞았다. ‘뱃살은 따로 껍질째 얇게 썰어 먹는 게 좋고, 아가미는 뼈째 총총 다져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야 하고, 껍질은 끓는 물에 데쳐 먹어야 한다. 쫀득쫀득한 부레는 소금에 찍어 먹어야 좋다.’ 먹어서 터득한 것인지는 몰라도 시인 안도현의 민어 식음법(食飮法)은 적확했다. 별스러운 민어 맛 때문일까, 낮술로 마신 로열살루트에도 크게 취하지 않았다.

맛에 함께 깃들 수 있고, 마음을 서로 허(許)할 수 있는 벗들과의 동행이라서 회와 술의 교합은 맛을 넘어 멋의 운치에 다가서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영암에서 먹던 농어회가 그리워서 주인에게 물어, 흘러 닿은 곳은 횟집, ‘H어장’. 썰어 내온 농어회는 지난여름에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 여름의 맛이 아니라니까, 농어 맛은 여름것이 아니라 가을것이란다. 회가 아니면 탕이 어떡하겠느냐고 하길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가을까지 기다릴 것 없이 탕으로 맛을 보자는 데 뜻이 모여서 농어탕을 주문했다.

H어장에서의 무르익은 분위기 때문에 밤은 어느덧 깊어 있었다. H어장의 문이 닫힌 것은 10시를 훨씬 넘어서였다. 하는 짓들이 밉지 않았던지, 눈빛이 고운 주인이 라이브 카페로 경상도 사나이들을 이끌어다 주었다. 목포대교의 조명이 아름답게 비춰드는 ‘신안비치호텔갤러리’에서 가슴에 젖어 드는 노래를 들으며, 뜨내기들은 목포의 자정을 넘겨 버렸다. 

 

4 뱃살은 뱃살대로,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부레는 부레대로 혀에 부딪히는 맛이 정말 별스럽게 감칠 맞은 민어회이다.
4 뱃살은 뱃살대로,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부레는 부레대로 혀에 부딪히는 맛이 정말 별스럽게 감칠 맞은 민어회이다.

 

뜨거운 맛의 홍도 전복죽

이튿날 아침은 목포의 ‘제주식당’에서 간밤에 술에 찌든 위장을 콩나물해장국으로 헹궈낸 후,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앞 연석(緣石)에 제비처럼 나란히 걸터앉아 홍도행 배를 가슴 설레며 기다렸다. 우리를 태운 뉴골드스타호는 아침 바다에 이는 파도를 가르며,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를 날카롭게 빠져나갔다. 섬을 돌아나가자 세상은 온통 물과 하늘뿐이었는데, 물은 망망하고 하늘은 공활했다.

망망한 물과 공활한 하늘 사이를 샅이 훤히 뚫린 배가 홍도를 향해 내달았다. 바다에 실린 파도는 일렁이면서 서로 부딪쳐 서로를 밀쳐내고 썰어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파도의 이랑을 수도 없이 세웠다간 쓰러뜨리는데, 정작 시간은 자신의 자취를 바다에 남기지 않았다. 서쪽으로 밀고 나가는 해로써 시간의 흔적을 가늠하며, 사람들은 홍도 쪽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섬의 산부리가 아득한 수평선에 걸려들었다. 그 산부리는 홍도의 것이었다. 그래, 홍도이다.

홍도의 바닷바람은 갯내음이 묻었을 뿐, 육지의 그것처럼 역시 뜨거웠다. 살갗으로 암팡지게 파고드는 뜨거움을 손으로 뜯어내며, 홍도의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은 그 가파른 곳에 까대기처럼 붙여지어서 문 위에 달린 식당의 간판을 읽을 수 없었다. 세상이 끓는 팔월 염천에 홍도에서 유명하다는 전복죽을 앞에 놓고, 비싼 값에 어울리도록 우아하게 먹으려니, 홍도도 뜨겁고 전복죽도 뜨거워 몸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 홍도의 전복죽은 이렇게 뜨거운 맛이었다.

유람선에 몸을 얹어, 배를 저어 바다로 나아가니, 홍도의 풍광이 몸에 붙은 땀을 뜯어내 주었다. 안내원의 입담이 해학의 언저리를 넘어 육담(肉談)에 이르기도 해서 몸에 박힌 뜨거운 기운을 웃음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안내원의 입담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데, 풍광은 홍도에 달라붙고 바다에 떴다. 우선 유람선의 용골이 방향을 잡아간 곳은 홍도의 제 일경인 남문바위였다. 삐쭉이 솟은 바위섬들을 좌우로 거느리고, 중간이 뚫린 이 바위는 수루에 초병을 세운 어느 유서 깊은 성채의 문 같았다. 

 

가을에 제맛을 낸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농어회이라고 해서인지 여름 농어회도 역시 맛있다
가을에 제맛을 낸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농어회이라고 해서인지 여름 농어회도 역시 맛있다

 

바다 위 홍도 유람

이렇게 시작한 두 시간 넘는 홍도 유람은 홍도와 그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거늘, 마음을 찌르고 드는 조마조마함도 있었다. 실금리 굴에 다다른 유람선은 도무지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좁은 동굴을 뚫고 들어갔다. 안내원의 말마따나 동굴은 꼬무락꼬무락 비집고 들어가야 비로소 유람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나, 뭐라나…. 육담에 길이 들어서인지 안내원의 육담은 곰삭고 거침이 없는데, 그 절정은 ‘거시기와 머시기바위’에 이르러서였다.

“거시기와 머시기가 그냥 허벌난께, 얼릉 보시랑께, 쩌그 쩌.”

모두 ‘거시기와 머시기’의 정체를 동그랗게 뜬 눈을 굴려 찾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걸 찾기도 전에 안내원은 느닷없이, 천심 절벽 끝에 몸을 간당간당 붙이고 서서 억겁의 바닷바람과 맞서온 소나무를 가리키며, “저 소나무 하나 집에들 뽑아 가부러.”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뽑을 수만 있다면, 뽑아가고 싶었다. 인간의 욕심은 어느덧 여기에 닿아 있었다.

홍도의 바위를 가리키며, 인간은 한 자도 못 되는 뇌를 궁굴리는가 하면, 세 치도 못 되는 혀를 두드려 때로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때로는 사람을 슬프게 하고, 때로는 사람을 포복절도케 하는 것이다. 홍도는 그렇게 그 한 부분을 인간에게 내어 주었다. 아, 인간이여, 인간이여.

사람이 그 이름을 지어놓은 바위들인 촛대바위를 지나고, 부부탑바위를 지나고, 독립문바위를 지나고, 시루바위를 지나서 ‘흔들바위’에 이르렀다. 절벽에서 떨어져 나왔으되, 그 절벽 끝에 위태롭게 붙은 바위였다. 몸을 뒤척여 허공에 뜬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이 될 듯했다. 「피레네의 성」은 중력을 잃어버린 채 거친 파도 위에 떴거늘, ‘흔들바위’는 무엇을 상상하며, 어떤 의지로 바위 끝에 바위로 붙어 있는가. 홍도는 규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섬이어서 온갖 바위들이 갈래갈래 찢겨거늘, 흔들바위 역시 그리되었으리라마는 사람은 그 뜻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낙지호롱구이는 꼬치째 들고 벗겨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낙지호롱구이는 꼬치째 들고 벗겨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창조주가 빚은 붉은 섬

홍도의 절벽에 자연스럽지 못하게 붙은 흔들바위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어 바다로 옮기니, 손잡이 없는 주전자 하나가 시선에 걸려들었다. 어떤 자발없는 주정뱅이가 명정(酩酊)에 들어 죄 없는 주전자를 패대기치는 바람에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이렇게 행패를 부리던 주정뱅이는 주전자 옆의 바다에 누워 버렸는데, 몸뚱이는 바다에 잠기고 술배만 물 위에 둥둥 떴다. 주정뱅이의 명정에 분통이 터져 주전자, 그도 낮술에 취했나 보다. 그래서 이 주전자도 붉다. 아니 주전자바위가 붉었다.

홍도는 철분이 많은 퇴적암으로 이루어져서 바위들은 붉고, 그러므로 홍도가 붉은 것이다. 과학이 나서서 홍도의 바위를 사암과 규암으로 분석하고, 그 바위에서 철분을 관찰해낸 것이다. 홍도는 과학이 분석하고 관찰해낸 붉은 섬이다. 홍도는 창조주의 갤러리이다. 홍도의 바위 한 지점에서는 거북이 한 마리가 목을 빼고 기어가고, 홍도의 바다 한 곳에서는 공작새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한다. 영겁의 세월을 갈아 바위에다가 거북이를 기어가게 하고, 바다 가운데에다가 공작 한 마리를 의뭉스럽게 띄워 놓은 이는 창조주일 터이다.

생명 있는 것을 짓기 전에 창조주는 홍도를 세상에서 으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 여겨 넌지시 생명 없는 그것들을 이 홍도에다 창조해 놓았으리라. 의도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놀라운 의도로 자르고, 썰고, 가르고, 부수고, 뚫고, 포개어 우리의 땅, 이 놀라운 홍도를 얽어냈으리라. 자신의 갤러리를 위한 창조주의 퍼포먼스는 이렇듯 정치(精緻)하고 현란했다. 아, 창조주여, 창조주여! 홍도는 인간의 영역에서나, 과학의 영역에서나, 창조주의 영역에서나, 참 징하게 멋스러웠다.

유람선의 고물에 앉아 전라도산 소주에 곁들여 먹은 돔회와 선창가 ‘해녀 민수네’에서 소주 뚜껑을 돌려가며 먹은 전복, 소라, 멍게로 홍도의 맛을 즐긴 후에 우리는 다시 뜨내기가 되어 홍도를 떠났다. 뱃길 멀리 흑산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에서 바라본 흑산은 검은빛이 아니었다. 구름에 휩싸이고 바닷물에 뜬 흑산은 희고 푸르렀다.

 

경상도 사나이의 입맛으로는 가늠하기 어렵게 징한 맛을 지닌 홍어애탕이다.
경상도 사나이의 입맛으로는 가늠하기 어렵게 징한 맛을 지닌 홍어애탕이다.

 

화룡점정 남도 홍어의 맛

남도 기행의 맛과 멋을 홍도에서 흠뻑 호흡하고도 맛에 미진함이 남아서 찾아든 곳은 ‘덕인집’이었다. 홍어로 이름난 덕인집은 남도 기행의 화룡점정을 해야 할 식당이었다. 홍도를 기행하고서도 홍어를 먹어보지 못했다면, 용의 그림에 그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일 테니까. 식도락을 아는 사람답게 홍어 삼합과 홍어애탕을 시켜 먹었다. 그러나 마땅히 먹어야 할 일이어서 먹긴 했는데, 홍어는 몸에 착 감겨들진 않았다. 특히 홍어애탕이 입에 붙질 않았는데, 그건 아마 내 비위 탓일 게다.

마지막 밤을 맛으로만 보낼 수 없어 또 다른 멋을 찾아 조선비치갤러리로 발길을 잡았다. 목포대교의 은은한 조명이 스며드는 하늘엔 칠석을 넘긴 소쇄(瀟灑)한 반달이 낮게 떴다. 여가수의 잔잔한 노래가 밤바다에 낮게 깔려 들었다. 그 서슬에 달빛이 음표처럼 물너울 위에서 떨었다. 이어서 등장한, 몸집이 듬직한 가수가 부른 노래는 가슴의 웅숭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는데, 그것은 뜨내기들의 세대에 맞추어 부른 노래에 매혹적인 달빛이 주는 분위기가 더해진 까닭이리라.

빨간 옷의 여자 둘이 객석에서 무대 곁으로 나가 막춤을 추며, 흥에 겨워하는 틈새로 점잖은 남자들은 추임새를 찔러 넣었다. 목포의 앞바다도 덩달아 달빛을 싣고 울렁거리며, 몸을 들썩거렸다. 남도 기행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남도 기행의 마지막 날, 유달산에 올라 노적봉과 이난영 노래비를 구경하려고, 술기운을 떨쳐내고 길을 나섰다. 이난영 노래에 혼을 실어보고, 노적봉의 기하학적 분위기에 매료당해 볼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등에 달라붙은 더위 때문에 거기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술기운도 남아 있었고.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 보고 말았으나, 유달산은 목포의 멋을 대표함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유달산을 그렇게 믿기로 작정하면서 목포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꾸린 짐을 짊어지고 ‘초원식당’이란 데를 찾아갔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먹는 일이 선민의식을 자극했는지, 초원식당의 갈치조림과 병어찜은 소박한 듯하면서도 숭늉처럼 그 맛이 깊었다. 그 맛을 즐기며, 유달산만큼 불룩하게 배를 채우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연한 살코기와 얼큰한 국물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아주는 갈치조림과 병어찜이다
연한 살코기와 얼큰한 국물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아주는 갈치조림과 병어찜이다

 

남도의 눈빛이여 안녕

무슨 미련이 남아서일까, 경상도 뜨내기들은 작취미성(昨醉未醒)에 H어장을 다시 찾아 그 횟집의 문을 의젓하게 열어젖혔다. 눈이 고운 주인이 뜨내기를 맞이하는 태도가 好好했다. 주인의 눈길이 짙게 스민 감성돔 회를 러시아산 보드카에 섞어 먹으니, 뜨내기들의 기분 역시 好好였다.

누가 주인의 눈길을 깊이 살핀 모양인데, 주인의 눈이 뜨내기를 어쩌면 막내를 바라보듯이, 어쩌면 남편을 바라보듯이, 아니 어쩌면 연하의 연인을 바라보듯이 애틋하게 바라보더라는 것이다. 그 눈길이 수상하면서도 그윽하더라면서 그는 오랫동안 그 주인의 미묘한 눈길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실은 남도 사람 특유의 살가운 인정을 보여준 인연으로 그의 눈빛이 곱게 보였을 터이지만….

어쨌든 내 얕은 가슴에 해방구가 있다면, 주인의 눈빛이 지어낸 미소를 가슴의 그 해방구에다 넣어 두고, 상상의 옷을 요사스럽게 입혀선 자유롭게 굴려보고 싶었다. 해방구는 치외법권 지대여서 상상이 주책없어도 탈 날 일은 전혀 없을 테니까. 인정어린 눈빛 때문에 H어장의 주인과의 이별은 그저 그런 보통의 것이 아닌 듯했다.

천박하지 아니하면서도 는실난실 웃는 주인의 눈빛이 뜨내기들의 가슴에 담겨 드는 듯하고, 경상도 뜨내기들이 무뚝뚝하지만 능청스럽게 쥐여주는 정이 주인의 마음 안에 끼쳐 드는 것만도 같아서 말이다. 어쨌든 주인의 그 눈빛이 뜨내기의 눈에 남도의 멋으로 비춰졌다면, 시각(視覺)의 왜곡이 심한 탓일까, 모를 일이다. 남도여, 남도의 눈빛이여, 안녕.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와서, 어느 아파트 벤치에서 맥주 한 캔씩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뜨내기들의 남도 기행은 마무리되었다. 지난 팔월 염천의 일이었다. 

 

홍도 해안절벽을 이룬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 왼쪽 바위섬은 상제비여다. (사진·정종원 기자)
홍도 해안절벽을 이룬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 왼쪽 바위섬은 상제비여다. (사진·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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