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초대석_작가 이문열의 등산예찬 上

 

 

“산이 가장 훌륭한 의사고,  최고의 운동이 등산입니다”

 

당대 최고의 작가 이문열. 그의 작품 세계는 신선한 영역 개척으로 점철된다. 산악의 도전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런 창작의 바탕에는 방대한 독서량, 전문가와 식자의 수많은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두주불사(斗酒不辭)가 작품의 씨앗이었으리라. 물론 건강을 대가로 제공했다. 하지만 그는 등산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래서 그 사연과 산과 관련한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글 · 이충직 발행인   사진 · 정종원 기자

 

 

Q   처음 산을 접한 게 언제인가요?

A  서울 안암동과 경남 밀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1학년 때 경북 영양 시골로 이사를 왔어요. 그때는 밥을 지으려면 나무로 연료를 하던 시절인데, 동네에 있는 나무를 다 베서 십오 리(6km) 거리에 있는 산까지 다녀오곤 했죠. 어린나이에 나무를 가득 실은 지게를 짊어지는 게 정말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오가는 길에 자주 쉬니깐 갈수록 힘이 더 들고, 또 여러 번 넘어져서 집에 오면 지게에 실어 온 나무 중 반이 없어져 버리곤 했죠. 어깨는 벌겋고 고생은 배로 했던 중학교 시절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당시 지게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리던 경험은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제게는 늘 하는 생활이었지요. 그래서 20대에 친구들이 호연지기를 배우러 산을 가자고 하면, “이제서 그걸 배우려고 하느냐” 하면서 여유를 부린 적도 있어요(웃음).     

 

Q   요즘 산행을 자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A  최근 산행을 매우 즐겁게 합니다. 왜냐하면 6개월 전 병원에서 정기 검진 결과를 받아보니까 매우 위험한 상태라서 무척 당황한 적이 있어요. 늘 술통을 안고 살아서 일찍이 건강을 챙기지 못한 걸 후회하는데, 막상 고치려니 병원에서도 안 된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는데, 문득 ‘걷기’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우리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뒷산은 설봉산 우백호 부분인데, 산이 완만하고 그윽함이 있어요. 그곳을 거의 매일 등산으로 11km 정도 걷는데, 주변에서는 무리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이전의 검진 결과로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꾸준히 등산을 했어요.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나니깐 신체에 변화가 일어났어요.

 

 

Q   산행으로 건강은 많이 좋아지셨나요?

A  일단 체중을 12kg 감량했고, 당 수치가 떨어졌습니다. 지방간과 신장 수치도 정상화되었죠. 아직 수치가 일부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건강상 무의미한 것이죠. 산행을 통하여 참으로 신기한 효험을 얻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Q   그러면 산이 일종의 의사 역할을 했군요.

A  그렇죠. 10년 전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친구가 약을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기에 제가 면박을 주었어요. 그랬던 제가 근래에는 그 친구처럼 약을 한 움큼씩 먹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등산을 시작하고부터는 약을 줄여서 몇 알만 먹고 있어요. 내 병을 고쳐준 게 의사가 아니라, 산이 가장 훌륭한 의사라고 예찬하고 싶네요. 최고의 운동이 등산입니다.     

 

Q   인근에 자주 찾는 산행코스가 있는지요?

A  설봉산에 경사가 완만한 산길이 있는데, 오르막이 40분 내리막이 40분 걸립니다. 운동하기에 적당한 거리죠. 무릎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 편안한 코스입니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다가 40년 만에 처음으로 등산을 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호흡도 그렇고 근육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 나도 모르게 점차 적응되더군요. 운동장이나 도심 걷기를 하면 시각적으로 산만함이 있어요. 하지만 산행을 하면 번잡함이 지워지고 새로운 것을 담을 집중력이 생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Q   산행이나 자연이 마음의 안식이나 영감을 가져다준다고 보는군요.

A  그동안 무리지어 등산을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혼자 걷고 사색하는 걸 좋아했어요. 산은 길하고 연결되더군요. 살다 보면 갑갑한 순간이 누구나 있잖아요. 중요한 시점에 결판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시간은 가고 대책은 없으면 참 암울하죠. 그럴 때면 도회지를 벗어나 자연 속 걷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번민을 잊어버리고 복잡함이 단순화되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Q   특별이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산행 코스가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많지요. 창수령도 있고, 문경새재를 두 번 넘었고, 이화령도 걸어서 넘었습니다. 걷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나열해보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깨달음은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변 경치를 감상할 때 일어났습니다.

때때로 문득 충격, 영감, 암시와 같은 감정과 함께 ‘한고비 넘는구나’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 경험을 하곤 하죠. 이런 배경에는 그 순간의 아름다운 자연, 일상 탈출, 모험심, 육체적 고통, 사색 등의 결과물이 조화를 이루어서 생성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작품 <그해 겨울>의 격정적인 창수령(蒼水嶺)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창수령, 해발 700미터.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동안의 세 시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세계의 어떤 지방 어느 봉우리에서도 나는 지금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리라.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신성하던 그 모든 것들. 그 눈 덮인 봉우리의 장려함, 푸르스름하게 그림자 진 골짜기의 신비를 나는 잊지 못한다. 무겁게 쌓인 눈 때문에 가지가 찢겨버린 적송, 그 처절한 아름다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눈 녹은 물로 햇살에 번쩍이던 참나무 줄기의 억세고 당당한 모습, 섬세한 가지 위에 핀 설화로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서 있던 낙엽송의 우아한 자태도 나는 잊지 못한다. 도전적이고 오만하던 노간주나무조차도 얼마나 자그마하고 겸손하게 서 있던가?

수줍은 물푸레 줄기며 떡갈 등걸을 검은 망사 가리개처럼 덮고 있던 계곡의 칡넝쿨, 다래넝쿨, 그리고 연약한 줄기 끝만 겨우 눈 밖으로 나와 있던 진달래와 하얀 억새꽃의 가련한 아름다움, 수십 년생의 싸리나무가 덮인 등성이를 지날 때의 감각은 그대로 전율이었다.”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