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무당크랙 프로젝트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크랙이다!

 

글 사진 · 권혁균(가천대학교 산악부)

 

 

나는 평소 멀티등반을 즐겨하는데, 그중에서도 크랙등반에 가장 재미를 느낀다. 찹찹 감기는 레이백의 손맛은 쭈욱 늘어나는 인절미를 먹는 기분이 들 정도로 찰지다. 재밍은 또 어떤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런 본능을 잘 이해한 게임이 바로 테트리스 아닐까? 크랙등반도 테트리스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크랙등반은 불특정한 크랙에 손과 발을 넣고 비트는 것이다. 크랙과 내 몸이 원래 붙어있는 상태라도 되는 듯이 꽉 맞는 상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를 때 그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크랙등반인 것이다!

 

나의 첫 크랙 프로젝트

무당크랙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청주대학교 산악부 건희가 자신의 SNS에 올린 게시물을 봤을 때이다. 영상에는 건희가 몇 번이고 무당크랙을 오르는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등반을 잘하는 건희도 어려워하는 루트라는 것에서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면서, ‘언젠가 시간 날 때 가봐야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신나게 선인봉과 인수봉을 오르다 보니 무당크랙은 잠시 잊게 되었다.

2020년 10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바위에 매달려 오들오들 떠는 계절이 다시 찾아오고, 이제는 추워서 더이상 멀티피치는 할 수 없을 때였다. 추위 속 선인봉 하늘길 등반을 마친 어느 날 문득 잊고 있던 무당크랙이 떠올랐다. 생각난 김에 하산길에 무당크랙에 들르기로 마음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짱구바위로 향했다.

짱구바위 앞에 서자 선명한 크랙선과 오버행에 압도되어 잠시 주눅이 들었다. 마치 무당크랙이 “덤벼볼 테면 덤벼봐”라며 내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다 이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당크랙을 올해 안에 부숴버리겠다!’라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무당크랙은 씬핸드 재밍부터 피스트 재밍까지 다양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는 오버행 크랙으로, 난이도는 5.11b-, 등반 길이는 약 17m이다. 스포츠 루트는 난이도 5.12급까지 레드포인트로 등반해본 적이 있지만, 5.11급의 크랙도, 오버행 스타일의 크랙도 난생처음 해보는 등반이었다.

내 수준보다 한참 높은 난이도의 크랙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그동안 나는 선뜻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쉽게 오지 않는 온사이트의 기회가 있음에도 도전조차 하지 못한 적이 많았는데,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무당크랙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내게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어색하고 어려운 재밍의 세계

좋은 등반을 하려면 좋은 파트너가 필요한 법. 나는 짱구바위에서 강적크랙 프로젝트를 도전 중인 고교생 클라이머 홍재우에게 연락했고, 마침 재우도 자일파트너가 필요하다며 흔쾌히 제안을 승낙해 우리는 함께 짱구바위로 향했다. 짱구바위는 도봉산 들머리부터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미처 몸이 다 풀리기도 전에 금세 짱구바위에 도착했다. 그동안 어떻게 선인봉을 다녔는지, 짱구바위에서 선인봉이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 같다.

짱구바위는 뒷길로 걸어 올라가 줄을 내려 톱로핑 방식으로 등반할 수 있다. 짱구바위 로컬인 재우가 능숙하게 줄을 설치한 후 시범등반을 보여줬다. 초반 부분은 기계처럼 쓱싹 올라가더니 사선 크랙 부분에서 테이크를 받았다. 이 구간이 크럭스인지 재우는 잠시 휴식하며 회복 후 다시 등반을 이어갔다. 이내 사선 크랙을 거뜬히 넘어간 후 하강하며, 재우의 등반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다음은 내 차례! 등반의 꽃은 온사이트이지만 사실 겁이 났다. 보기에도 오버행이 심한 크랙의 바로 아래에 서니 몸이 뒤로 기울어져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등반을 하면서 추락으로 인해 발목만 두 번 부러져 휠체어 신세를 진 적이 있기 때문에, 온사이트 욕심은 접어두고 톱로핑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코어에 집중하고 한차례 기합을 외친 뒤 적절한 크랙을 손으로 훑어보았다. 1호캠 바로 아랫부분에 왼손을 밀어 넣고 최대한 손을 부풀렸다. 마치 내 모공에 박힌 피지마냥 쏙 들어가 빠지지 않는 손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왼손을 크랙에 낀 채로 오른발을 크랙에 쑤셔 박고 일어서면서 계속해서 재밍을 이어 나갔다. 점차 크랙의 간격이 넓어지면서 적절한 재밍 위치를 찾는 게 중요했는데, 첫 시도라 그런지 굉장히 버벅거리면서 등반을 진행했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등반이 잘 진행됐다. ‘그간 멀티등반에서 크랙을 열심히 해서일까? 아니면 톱로핑 등반이어서 일까?’라는 오만한 생각이 들 때쯤, 힘껏 뻗은 손이 애석하게도 재밍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재밍을 하려고 아등바등 요리조리 손을 비틀어 보았지만 결과는 결국 올가미 닻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여우 신세였다.

잠시 줄에 매달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등반에 전념했다. 오른손 핸드재밍을 깊숙이 넣은 후 사선크랙에 왼손 씬핸드재밍을 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능숙하게 동작을 구사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지만, 씬핸드재밍 경험이 없는 애꿎은 나의 왼손은 자꾸만 빠져버릴 뿐이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나는 결국 그 한 동작을 풀지 못하고 내려와야만 했다. 부분 동작도 되지 않다니… 바위 앞의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힘을 많이 빼서 동작이 안 된 거라 자기 위로를 하며 첫 무당크랙 등반을 마무리했다.

 

 

등반 열정으로 뜨거운 짱구바위

아쉬움이 많았던 첫 등반 이후, 풀지 못했던 씬핸드재밍 구간을 넘어가는데 무려 4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쉽게 풀릴 줄 알았으나 동작풀이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절대 안 걸릴 것 같은 왼손 씬핸드재밍도 적응이 됐는지 겨우겨우 합손이 가능해졌다.

이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으니, 뒤이어 무당크랙의 크럭스인 두 번째 관문이 도사리고 있었다. 걸린 건지 만 건지 긴가민가한 재밍을 버티면서 오버행 바위 턱에 올라서는 동작인데, 이 동작 저 동작을 시도 했지만 쉽게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무당크랙에 애증을 느끼며 바위와 투닥투닥 하는데, 평소 나와 재우 밖에 없던 짱구바위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자세히 보니 고려대학교 산악부 연준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이곳에 혼자 어쩐 일이냐고 인사를 건네니, 연준이는 그저 바위를 구경하러 왔다고 답한다. 그런데 보통 구경만 하러 온 사람은 자일을 안 들고 오지 않나?! 등반 장비와 자일을 가지고 바위를 구경하러 온 연준이가 신기했다.

내가 빌레이를 봐주기로 하고 연준이가 무당크랙 등반을 시작했다. 첫 번째 관문까지 순식간에 등반하는 연준이에게 왜 이렇게 잘하느냐고 묻자, 사실 혼자서 무당크랙을 자주 찾아왔다고 대답했다. 알고보니 연준이는 혼자서 줄을 픽스하고 솔로등반으로 무당크랙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준이의 순수한 등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후 서로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무당크랙에 가면 종종 연준이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자세가 좋은지 공유도 하고 응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루트를 프로젝트로 하는 클라이머를 만나 동기부여가 되었고, 속으로는 내가 먼저 등반을 완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무당크랙을 찾았다. 그리고 야간근무를 할 때면 오전 9시 퇴근 직후에 곧장 도봉산으로 향했다. 무당크랙 하단부 동작을 기계처럼 할 수 있을 때 즈음 결국 크럭스 동작을 해결 할 수 있었다. 저마다 크럭스를 넘어가는 방법이 다른데, 나는 왼손 썸업 핸드재밍을 버티면서 오른손으로 양호한 크랙을 잡은 뒤 왼손으로 바위면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크럭스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완등을 향한 모든 퍼즐조각을 맞춰진 셈이었다.

이제 부분 동작들을 연결만 하면 되니깐 금방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실내 체육시설 이용 금지로 인한 나의 운동부족은 근지구력을 산악부 신입생 시절로 되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결국, 2020년 안에 끝내겠다는 나의 목표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쯤 되니 무당크랙이 원망스러웠고, 한 가지 루트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숱한 도전으로 완성된 순간

속상한 내 마음을 알았는지 북극에서 에어컨을 강풍으로 틀어버려 한반도를 꽁꽁 얼려버렸다. 강추위로 등반이 어려워진 덕에 나는 잠시나마 무당크랙이라는 통곡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빙벽등반을 하면서도 나는 습관적으로 항상 날씨를 찾아보며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아이스 바일을 찍으면서도 머릿속에는 무당크랙이 아른거렸다.  

2021년 1월 23일, 북극곰들도 추워서 동면에 들어갔는지 에어컨을 잠시 끄고 온풍기를 틀었나보다. 무려 영상 7도를 순회하는 날씨가 갑자기 찾아왔다. 빙벽장비들을 구석에 내팽개치고 다시 캐머롯과 암벽화를 가방에 주섬주섬 담고 당차게 짱구바위로 향했다.

무당크랙을 등반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12시에서 2시 사이다. 겨울의 태양이 무당크랙을 강렬하게 비출 때 비로소 등반은 시작된다. 기억을 떠올릴 겸 톱로핑 방식으로 먼저 몸을 풀어봤다. 힘을 빼지 않기 위해 크럭스 부분은 빼고 등반을 해 봤는데 자연스러운 등반이 이어졌고 느낌이 좋았다. 평소라면 첫 번째 판부터 손이 찢어질 듯 시렸을 테지만 따스한 날씨 덕분인지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몇 십번을 시도한 무당크랙이지만 오늘따라 리드 등반이 더욱 긴장되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등반을 시작했다. 하단부를 자연스럽게 오른 뒤 휴식 지점에서 손을 털어줬다. 거친 숨이 진정됐을 때 다시 밀어붙이듯 등반을 이어갔다. 이제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고 오로지 오름짓 뿐이었다. 방심하면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사선크랙을 힘겹게 지나 고정볼트에 클립한 뒤 항상 떨어졌던 크럭스 구간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온 집중을 다 해 왼손 썸업핸드재밍을 크랙 사이에 밀어 넣고 오른발을 올렸다. 그 후 오른손으로 크랙을 잡고 동시에 왼손을 푸시한 뒤 왼발을 올렸다. 이 모든 동작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몇십 번의 실패와 오름짓이 있었기에 완성된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악!! 완등!!”

크럭스 이후 쉬운 크랙을 조심스레 올라 완등지점인 쌍볼트에 로프를 클립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나의 첫 프로젝트 등반이 마무리되었다. 완등의 기쁨을 만끽하며 싱글벙글한 내게 자일 파트너 재우가 축하와 함께 다음 모험을 제안했다.  

“형, 다음 프로젝트는 코끼리크랙이나 청봉크랙 가시죠!”

“좋지! 줄은 네가 깔아주는 거지?”

 

 

희로애락의 오름짓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느꼈다. 등반이 잘 풀리지 않아 짜증이 많이 나기도 하고, 너무 슬프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등반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떨어져도 마냥 싱글벙글했던 적도 있다. 또한, 항상 친구들과 멀티등반을 하던 내게 혼자만의 싸움인 프로젝트 등반은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서로를 응원하며 빌레이를 봐준 재우와 벽에 매달려 동영상을 찍어준 세종대학교 산악부 희선이가 있어서 항상 너무 고마웠고 즐거웠다. 높은 난이도의 등반을 완등 하는 것도 성취감 있고 즐겁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산에 오르는 것도 좋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내게 산에서 하는 모든 일은 무엇이든 ‘즐거움’ 같다.

나의 첫 크랙등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등반을 그려보았다. 프로젝트 등반도 좋지만, 오는 봄에는 다시 인수봉과 선인봉을 오르고 싶다. 겨우내 크랙 프로젝트에 몰두해있었으니, 그동안 등한시했던 슬랩 훈련을 위해 당분간은 수리봉에서 슬랩등반에 매진할 생각이다. 나는 크랙·페이스·슬랩·스포츠·볼더링 등 모든 분야가 재미있고 또한 잘하고 싶다. 더 잘하려면 분야를 편식하지 말고, 못하는 부분을 더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크랙등반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언젠가 재우와 함께 코끼리크랙을 등반하게 된다면, 아마 코끼리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

 

* 무당크랙 완등 영상은 유튜브채널 ‘권코몽클라이밍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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